8卷4冊 : 四周雙邊 半郭 21.0 x 16.4 cm, 有界, 10行20字 註雙行, 內向2葉花紋魚尾 ; 32.3 x 21.1 cm.
조선 중기 경북 의성에 세거하였던 김종섭의 시문집이다. 할아버지는김이모(金履模), 아버지 는 김남응(金南應)이다. 김남응의막내 아들이다. 어머니는 순천 김씨이다. 배위는 풍산 류씨로 류형(柳瀅)의 딸이다.어릴 때부터 조용하고 침착하며 총명하여 재능과 지혜가 뛰어났다. 시문에 능통해 13세인 1755(영조 31)년매화를 감상하며 맏형인 김종덕이 낸 운자에 시를 지을 정도였다. 1759(영조 35)년 셋째 형과 함께 이상정 문하에 나아가 배웠다. 당시 사서(四 書)를 중요한 교재로 삼았던 듯하다. 특히 『소학』을 중심에 두되 『논어』와 『맹자』를 중요하게 탐독하여 실천에 힘쓰자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스승 이상정은 그 실천 또한 의리의 깊음을 수반해야 올바른 실천에 이를 수 있다고 충고하고 있다. 1768(영조 44)년 생원시에 합격했다. 이어 성균관에서 공부할 때인 1775(영조 51)년에는 전강(殿講) 대상자로뽑혀 왕이 참석한 집경당(輯慶堂)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 교육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벼슬 길에 더 이상 뜻을 두지 않았고 오히려 고향에 돌아와 위기지학을학문의 목표로 심성수양에 전념하였다. 스승 이상정을 비롯해 이종수, 류장원, 정종로, 김굉, 류범휴, 이만운, 류성휴, 조우원 등과 함께 직접 만나 강론하거나 서신을 통해 의문을 해소하는 등 자신의 학문적 성숙 을 이루는 데 힘썼다.그러나 형 김종경이 남긴 미완의 작업인 『심경강록간보』를 편찬하던 중 49세의 짧은 생을마감했다. 저서로는 문집을 비롯해 이상정과 문답서신을 모은 『사문기 문록(師門記聞錄)』을 비롯해 이상정의 임종을 앞둔 50일 간의 기록을 정리한 『대산선생고 종록(大山先生考終錄)』, 향촌사회의 무속신앙을 확인할 수 있는 『사촌동신문(沙村洞神文)』등을 남겼다.
이 문집은 서문과 발문이 없어 간행사항을 알 수 없다. 권지 1∼2는 시, 권지 3∼5에는서(書), 권지 6은서(書)와 잡저, 권지 7∼8에는 잡저, 설(說), 발(跋), 잠(箴), 묘지명, 애사, 뢰 문(誄文), 제문, 부록이 실려 있다. 실제 작품 현황을 보면 시가 220여 수, 서(書)가 120편, 잡저에 「사문기문록(師門記聞錄)」, 「수록(隨錄)」, 「서시재중제군(書示齋中諸君)」등 7편, 설(說) 3편, 발(跋) 3편, 잠(箴) 2편, 묘지 1편, 애사 5편, 뢰문 3편, 제문 15편으로 되어 있다. 부록에만사가 6수, 뢰문 1편, 애사 1편, 제문 8편, 행장 1편, 「신해고종일록(辛亥考終 日錄)」이 1편이 수록되어 있다.